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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이야기

정광 정혜원

by 곰네마리가족 2018. 6. 1.

목포역에서 유달산을 향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명한 유달산을 만나 볼수 있다. 유달산 주변에는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특색 있는 사찰이 여러군데 있다고 한다.


정광정혜원은 1917년 일본인 도현화상이 흥선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광복후  만암 큰스님이 사찰명을 정광 정혜원으로 바꾸어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백양사에 등록되어 있다. 정광 정혜원은 만암 큰스님과 서웅 큰스님이 주석하신 유서깊은 사찰로써 지붕의 기와와 일부 창호만 새로 교체 했을 뿐 전반적으로 건립당시의 모습(일본식 목조 사찰)을 유지하고 있다. 경내에는 조선후기에 경주불석으로 조성한 관음보살좌상이 있고 1931년 조성된 보현보살상과 석탑이 남아 있다. 정광정혜원은 노적봉 아래 터를 잡은 목포의 작은 사찰이다. 시인 고은과 법정 스님의 만남이 있었던 곳으로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법정스님과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당시 승려였던 고은 시인이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정광정혜원으로 포교를 나왔다가 전남대 상대를 휴학중이던 박재철(법정스님 속명)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후 수필을 써서 "현대문학"에 발표 하도록 주선하기도 하였다. 


보광사는 1928년 운계 화상이 중건한 사찰로 먼저 조성한 불상 주위에 법당을 만든 것이 특징으로 보광사 대웅전 안에 석조 석가여래조상이 모셔져 있다. 이석조석가여래좌상은 조선시대 불상의 착의법 요소를 잘 반영하고 있는 불상의 예로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석조 석가여래좌상과 짓샘 유달산의 바위 줄기에 불상을 새겨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바위에 석조 석가여래좌상을 세워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사찰로 발전해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짓샘은 석조 서가여래좌상 밑으로 물이 고여 생겨난 샘이다. 아르거나 산고가 들었을 때 효험이 있다고 하여 인근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법당안 샘'으로 이름나 TV등에 자주 소개 됐다.


관음사는 1939년에 최초 장정인 스님이 초가로 토굴을 지어서 그 당시에 영험이 있다고 해서 산신당이라고 하였답니다. 그 후 김포월 스님이 계셨고 백성수 스님이 증축하고 관음사라고 이름 하였으며, 그 후 법화종으로 관리해오다가 1987년 3월 17일에 명길스님과 일효산승이 인수를 받고 보니 법당이 많이 훼손되어 해체복구를 서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아무런 준비 없이 집을 헐고 주춧돌을 놓운 후 전국 유명한 명산 대천만 찾아 기도하면서 권선에 나섰다가 5년만인 1992년에 대웅전 완궁 재창건이 되엇습니다. 1999년에 대한 불교 조계종으로 등록 제22교구인 대흥사 말사가 되었습니다. 2001년 선방과 마당을 넓혀으며 2004년 10월 17일 낙성식과 수계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일주문 귀목나무는 1939년생이며 나주에 계신 박범수라는 분이 심었다고 합니다. 관음사는 유달산 혈이 거북바위로 내렸다는 전설에 따라 여험이 있는 절 도량으로 특히 많은 환자를 돕고 있다. 이제 2008년 7월 23일  부처님 진신사리 완과를 봉안하여 5층 석탑에 7M높이로 탑을 모셨으니 유달 보궁이 되어서 많은 불자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난 유달산의 역사와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닌 사찰이 있다. 정광 정혜원은 목포시에서 케이블카 개통을 위해서 관광지로 조성을 하였으나 최근에 터진 고은 시인 미투 사건으로 인해서 앞으로 지키고 있던 고은 시인 동상은 철거 되고 젊은 청년 법정 스님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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