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읍성 고샅길 마실가자!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천 여년간 전라남도를 품고 다스렸던 전라도 터줏대간 나주를 돌아보는 천년길 안동 향리와 함께 전국에서 유능한 지방 관리로 명성을 날렸던 나주 향리들이 읍성 안에 살며 만들어 놓은 고샅과 대로, 읍성과 사대문, 관아, 향교, 공예와 건축물 등 많은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근대기에 변화해 가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려 현종 몽진, 나주괘서 사건, 김천일 의병장 출병식, 단발령 의거, 동학농민혁명, 학생독립운동 등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 이 길을 따라 쉬엄 쉬엄 걷다 보면 나주인들의 목소리가 귓결에 들리는 듯 하고 함께 숨쉬는 듯 하다. 코스는 크게 동부길, 서부길로 나눈다. 서부길은 성안길 중에서 시간을 아끼며 꼭 보아야 할 것만 모아 놓은 코스며, 동부길은 조선시대 동부면 지역을 특징별로 나누어 놓은 코스이다. 시간이 넉넉하여 동부길과 서부길을 모두 돌면 성안 길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서부길은 조선 시대 서부면에 해당하던 길이며, 조선 향리들이 살던 전통 동네를 걸어서 둘러보는 약 3km 코스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금성관-의열각-나주목문화관-정수루-목사내아-예수재림교회-최부와 양부자 집터-보리마당길궁궐돌담 -서성벽길-서성문-나주향교-사마재길-둑제사길-이로당과 소나무-명당거리-사매기와향청터-사창거리와느티나무-연애고샅길-남파고택-일제강점기하수도길-금성관
동부길은 조선시대 동부면에 해당하는 길로, 주로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약5km 코스로 2시간 소요되는 자전거 코스다. 금성관-구)금남금융조합-구)나주극장-구)나주잠사-금성교-구)나주경찰서-전라우영터-군졸마을 고샅길-구)나주역-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무형문화재 나주반저수교육관-동점문-목사고을시장-동점 문밖 석당간-북망문-나주성당-향토음식전수관-사마교와 사매길
4대 100여년의 손맛과 정성의 결정체 나주곰탕 하얀집
소박한 서민 음식의 대표주가'곰탕' 맑은 국물에 기름기가 쫙 빠진 소고기, 송송 썰어진 대파에 깍두기를 올려 한입 후루룩 먹으면 뼛속까지 영양이 골고루 퍼진 듯한 느낌의 나주곰탕 만한 것이 있을까? 원조를 주장하는 "나주곰탕"집이 즐비해 있지만 그중 '나주곰탕 하얀집'은 나주 곰탕을 개발한 원조 중 원조이다. 100여년전 시장에서 서민들에게 따뜻한 한기 식사인 국밥을 시작으로 '곰탕'이란 이름을 붙인지 60여년, 4대를 이어오고 있으니 그 세월만으로도 맛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옛날 5일 마다 서던 나주장터에서"육문식당"으로 할머니와 어머니 일손을 도우며 어린시절 부터 가마솥 곁에서 자랐고, 60~70년 대에는 연탄불 옆에서 밤을 지샜던 곰탕 한가지로 평생을 살아온 나주 곰탕의 산 증인, 명인 길한수! 백발의 주인장, 길한수 명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보고 익한 맛을 군대 3년 빼고는 평생을 곰탕과 함께 하였다. 2007년도 하얀집의 길 명인은 전통의 맛을 인정받아 대한명인 문화교류회가 지정한 대한 명인이 되었다. 대한명인 지정으로 다시한번 '하얀집'의 명성을 입증한 샘이다. 할머니의 어머니 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곰탕 맛을 인정 받은것 같다던, 길 명인은 선대들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계쏙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고 말한다. 곰탕이 만들어진 사연은 뜨끈한 국물만큼이나 훈훈하다. 쇠고기가 귀했던 옛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깃국을 나눠주기 위해 곰탕을 만들었던 것이다. 곰탕하면 우윳빛 국물을 생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진짜 곰탕은 국물이 맑다. 이웃사촌 격인 설렁탕은 내장을 포함한 쇠고기의 거의 모든 부위를 넣고 고아 국물이 하얗고 진한반면, 곰탕은 사태나 쇠꼬리등을 넣고 끊인 맑은 장국이다. 탕이 끊으면서 생기는 기름을 계속 걷어 내야하기 때문에 보통 정성으로는 곰탕을 만들기가 어렵다. 하얀집은 곰탕 맛도 좋지만 배추김치 깍두기가 별미이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이 김치는 곰탕과는 아주 찰떡 궁합니다.
주말에 한번 시간을 내어서 나주의 여유 로운을 그리고 100여년 전통을 하얀집에서 곰탕 한그릇을 추천해 본다. 우리 가족은 하얀집을 너무 좋아해서 여유가 생기면 자주 방문하고 나주목사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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