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어제 가보아도 새롭고 신비한 섬이고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하겠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언제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나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다. 이번에는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제주 돌박물관을 방문하여 보았다. 10여년전에 문을 연곳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을 하게 되었다. 봄에 한번 방문 해보면 좋은 곳인 것 같다. 넓은 곳을 구석 구석 돌다 보니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 할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제주돌박물관
2001년 9월 19일 기공식으로 시작으로 2005년 12월 준공식이 이루어졌으며 국비, 도비, 군비등 무려 총 300억원을 드려서 건립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이 세워진 부지는 1989년 12월부터 1999년 12월 까지 10여년 동안 생활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으로, 침출수가 발생하기 않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3,000평 규모로 지하 2층에 수장고, 지하 1층에는 형성전시관과 자연석 전시관을 만드는 한편 옥상에는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건축물이 지상으로 돌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며 주변의 빼어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돌문화 공원만의 특색 있는 박물관 건립을 위해 건물 외벽은 도내에서 처음으로 제주도, 현무암 골재를 사용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또한 내외부 바닥 마감재 등도 제주도산 화산회토를 이용하여 고유하게 개발한 재료를 씀으로써 색과 질감에서 향토색이 물씬 묻어나도록 하였다. 돌문화 공원의 핵심 주제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이다.
설문대할망
옛날 설문대할망이라는 키큰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키가 켰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다. 이 할머니는 키가 큰것이 자랑거리였다. 할머니는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물들이 자기 키보다 깊은 것이 있는 가를 시험해 보려하였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연이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보니 물이 발등에 닿았고 서귀포시 서흥동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해서 들어서 보니 무릎까지 닿았다. 이렇게 물마다 깊이를 시험해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섰더니 그만 풍덩 빠져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물장오리가 밑이 터져 한정없이 깊은 물임을 미쳐 몰랐기 때문이다.
오백장군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여기에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이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라 부른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설문대 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해 몹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끊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정말 죽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막내아들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됐다. 막내는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죽을 먹어 치운 형제들과는 함께 못 살겠다면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제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며 한없이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 전설이다.
설문대할망 제단
설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으로 돌과 흙을 날라 제주섬을 만들었다. 이때 치마의 헤진 틈으로 흘러내린 돌과 흙이 여기저기 쌓여 360여 개의 오름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한라산 영실에 얽힌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이야기는 듣는 이를 숙연케한다. 솥에 자신의 육신을 던져 몸소 죽이 되어 굶는 오백명의 자식을 먹인 슬프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해마다 5월이면 그때 그들이 피눈물에 물들어진 철쭉들이 한라산 정상 여기저기에서 붉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5월이면 설문대 할망을 기리고 가정의 달에 기념하는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제주를 방문한다면 돌문화박물관 방문을 꼭 한번 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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