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포이야기

목포 옥단이길 기행

by 곰네마리가족 2018. 5. 26.


옥단이길의 유래가 된 옥단이 물지게 체험 만인계터 가는 길에 있다.


남도의 끝자락 항구도시 목포를 가다. 호남선의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목포를 방문하였다. 목포하면 떠오르는 것이 항구도시이다. 근대 문화의 흔적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다. 목포는 1897년 일본에 의해서 개항된 이후 전국 6개 도시로 뽑힐 만큼 성장하였던 도시이다. 그런 목포는 유달산이랑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달산을 빼고 목포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유달산 주변 목원동 일대 옥단이길이 조성 되어 있다.


목원동 일대 옥단이길은 목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옥단이길을 통해서 목포의 근대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다.


노라노 미술관

미술관 일대는 원래 조선시대 통신용으로 사용하던 말을 키우고 관리하던 "마방골"이 있던 곳이다. 목포 개항이루 대한제국 정부가 1897년 12월 '우체사'와 1898년 2월 '전보사'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우편과 전보의  발달은 근대 문물의 상징이다. 때문에 목포 도시화와 근대문화의 발달에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라노 미술관은 '노라노 패션 양재학원'으로 사용되다가 빈 건물로 오랫동안 방치 되던 곳이 지난 2015년 주민들과 예술인들의 뜻을 모아 공공 미술관으로 재탄생하였다. 미술관 밑에는 목포시에서 관광객들이 머물고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지원하고 있다. 목포 관광에서 머물 숙소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게스트하우스를 통해서 관광객들이 거쳐 가는 곳이 아닌 머물고 가는 목포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무사

일제 강점기에 목포는 일본인 거주 지역과 조선인 거주 지역이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서도 일본인들을 위하여 조선인들을 위하여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경무사 자리에는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위해서 수고한 총순 구종명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조선인들이 세운 기념비와 조선  경찰서인 경무사 터가 있다.이 비는 1906년 당시 경무서 소속 경찰(직책 총순)이었던 구종명의 선정을 칭송하기 위해 지역민들이 세운 공덕비이다. 시대적으로 조선경찰의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구종명은 일본인의 압력에 맞서 조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개항이후 목포의 사회상을 보여주며, 이곳이 목포 최초의 경찰서가 있던 공간임을 상징하는 유일한 유적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대한 민국 경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을 위해 헌신한 구종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겠다.


콩나물 동네

팥죽으로 유명한 평화분식 뒷쪽에 위치하고 있는 콩나물 동네는 목포 큰 시장(현 중앙식료시장) 옆에 자리한 골목 마을이다. 한국 전쟁이후 이 일대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움막을 치며 살기 시작하였다. 주민 중 한 사람이 생계유지를 위해 콩나물을 재배하여 인근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 후 골목 안의 전체 주민들이 콩나물을 재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골목길을 콩나물 동네 혹은 콩나물 공장이라고 불렀다. 입구에는 1935년 건립된 교회 석조 건물이 있었는데 화재로 사라지고 현재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무지개 구름 다리

하늘이 이뻐 보이는 무지개 구름다리에서 차범석 선생과 이매방 선생을 만나 볼 수 있다. 옥단이길은 차범석 선생의 실존인물이 주인공인 옥단어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우봉 이매방 선생은 한국무용가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 예능보유자였다. 이매방은 1927년 목포 대성동에서 태어났다. 원래 호적명은 규태였는데, 훗날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에서 따온 '매방'으로 개명하였다. 어릴 적에 목포권번에서 전통무용과 가락을 배웠다. 이대조, 이창조, 박용구 선생으로 부터 승무, 검무, 살풀이 춤 등 전통 무용을 배웠으며,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의 전통 무용을 대표하는 명인이 되었다. 1941년 목포에서 열린 '명인명창대회' 승무 공연을 시작으로 201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은관문화훈장과 프랑스 예술 문화훈장등 많은 상을 받았다. 차범석 선생은 목포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목포북교초등학교와 목포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차범석 생가

목포 출신의 극작가로 북교초등학교와 목포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차범석 생가를 만나 볼 수 있다. 1946년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연희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여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밀주, 귀향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주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식이 강한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불모지(1957년)와 산불(1962년)은 반전의식을 일깨운 전후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MBC드라마 전원일기의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목포와 관련된 작품으로는 희곡 "학이여, 사랑일레라"(1981년) "옥단어!"(2003년) 수필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1994년)등이 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0년), 예술원상(1982년), 대한민국문학상(1991년), 서울시 문학상(1998년)을 수상했다.


무인카페

옥단이길을 따라 가다보면 사랑 스러운 멍멍이와 아름 다운 정원이 있는 무인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단돈 2000원이면 맛난 아메리카노와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 운이 따르면 주인장을 만나 볼수도 있다. 개조심 안내판이 있어서 호랑이 만한 흰둥이 보면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정작 흰둥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이런 순둥이게게 조심이라니 무인카페에서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누려 보자.


옥단이길

옥단이길은 목원동 역사골목 탐방로이다. 옥단이는 목포 원도심의 골목을 누비며 물장수로 살았던 실존 인물로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목원동은 목포역과 유달산 자락 사이에 형성된 근대도시 목포의 심장이자 예향의 뿌리이다. 상가와 주거지를 연결하는 작은 골목길이 마치 심장의 혈관처럼 얽혀있고, 그 안에 다양한 근대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옥단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1897년 개항이후 조선인들이 이룩한 근대도시 목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목포청년회관

청년회관 건물은 일제 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문화 사랑방이자, 목포 최초의 시민회관 성격을 지닌 곳이다. 1920년에 조직된 목포청년회에서  성금을 모아 1925년에 완공하였다. 1927년 신간회 목포지부 창립식을 비롯하여 목포 청년들의 지덕함양과 민족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여류작가  박화성의 단편 "헐어진 청년회관"이 만들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건물 앞은 일제강점기 회성유치원과 광복후 원진극장이 있던 곳이며 인근에 무안감리서터가 있다.


유달예술타운

원래 달성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유달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학교로 북교초등학교로 통합된 후 폐교되었다.학교 본 건물 좌우로 설치된 기다란 돌미끄럼틀이 유명하다. 목포 문화의 집이 운영되다가 현재는 유달 예술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목포시립국악원 극단 새돌 등이 입주해 있다. 이 일대는 박화서의 1932년 작품 "하수도 공사"의 실제 배경이 되는 곳이며, 영화 "클래식"이 촬영된 명소이기도 하다.


벽화골목

옛날 달성초등학교 아래에 자리한 골목마을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에 지역 예술인들이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 알려지기 시작했고 목포시 도시 재생 선도사업을 통해 추가적으로 벽화와 체험 시설이  설치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벽화 골목을 지나면 유달예술타운으로 연결되며, 유달산 달성사를 거쳐 유달산 등산로와 둘레길을 이용할 수 있다.


옥단이길을 따라 여러곳을 방문하다보면 유달산 자락의 목포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를 몸소 느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목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의 항일 유적  (0) 2018.06.04
김우진  (0) 2018.06.02
정광 정혜원  (0) 2018.06.01
서울분식  (0) 2018.05.30
유달산 둘레길  (0) 2018.05.27

댓글